그동안 볼까 말까 망설이던 만화 《대답하세요! 프라임 미니스터》 1~2권을 이북으로 샀다.
왜 망설였는가 하면, 아직 연재중이라 1~2권 보고 나면 완결 전까지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전전긍긍할까봐. 그치만 완결까지 너무나 멀 것만 같아서 결국 못 기다리고 사버렸고, 이게 또 리디북스에서 연재하니까 매일 연재분을 볼까 말까 고민한다. 아직까지는 다음 권 나오면 사야지 하고 참고 있다.
이 만화는 임주연 작가의 영국정치 비엘 만화다. 가상의 시대 런던 하원의회를 배경으로, 집권당인 보수당의 예비 당수, 즉 예비 총리와 제1야당 노동당 당수가 원나잇하고 언론에 노출되는 바람에 계약 연애를 이어가는 이야기인데. 배경이 되는 정치 이야기가 꽤 디테일하게 표현된다. 작가가 꼼꼼하게 고증하여 의회 풍경이나 제도적인 부분은 현실 영국정치를 많이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영국은 한국과 굉장히 다른 시스템이니까 그런 부분도 상당히 신기하다.
현실의 영국정치는, 뭐랄까, 제도적으로는 전혀 닮고 싶지 않은 쪽이다. 이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하면 삼박사일도 떠들 수 있지만, 가장 단적으로 이유 하나만 먼저 들자면, 왕과 귀족이 있는 나라다. 군주제와 신분제, 딱 극혐임. 실질 정치를 안 한다는 귀족의회, 상원까지 있다. 상원의원이 되려면 단승이라도 귀족 작위를 받아야 한다. 제 정신이냐. 물론 다른 입헌군주제 나라는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군주제나 귀족의회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야. 있는 거랑 없는 거랑 같냐. 나는 여러모로 한국의 현 정치제도가 싫지만, 공화국이라는 점만큼은 자랑스럽다.
그러나 내 일 아니라고 생각하면 판타지 같지. 한때 정치에 좀 관심 있을 때 영국 PMQ(Prime Minister's Question)을 온라인으로 보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30분간, 의회에서 여당 총리가 야당 당수와 의원 질의에 응답하는 시간으로 인터넷 실시간 중계가 이뤄진다. 다른 언론 사이트는 안 찾아서 잘 모르지만, 가디언 사이트에서는 생방뿐 아니라 정치부 기자가 실시간 문자 코멘트도 진행한다. 정말 정치쇼의 끝판왕이다. 만화의 제목은 여기에서 따온 것입니다.
만화는 그림체도 취향이고 스토리 진행도 빠르고 재미있다. 특히 주조연 캐릭터가 생생하고 너무 전형적이지는 않아서 좋다. 현실감과 판타지의 적절한 조화. 로맨스 당사자인 두 주인공은 유명한 여성종군기자의 사생아로 잘 생긴 외모로 언론을 잘 이용하여 젊은 나이에 노동당 당수 자리에 오른 토머스 카디날, 보수당 의원답게 유서 깊은 부잣집 도련님인데, 현 총리로부터 차기 총리 후보로 지목되었다는 뉴스가 뜨자 인턴 보좌관이 "노엘이 총리가 됐다간... 영국 총리랑 자봤다는 사람이 수백 명은 나오게 되어버려!"라고 외칠 정도로 금사빠인 벤자민 노엘이다. 노엘의 고백에 따르면 수백명까지는 아니고 40~50명이라고. 주연도 주연이지만, 2권까지 뭔가의 흑막인 듯한 현 총리 헬렌 포셋, 총리실 특별보좌관 베아트릭스 스토너는 현실의 인물이 떠올라 더 흥미롭다.
2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역시 이렇게 큰 사건을 일으켜서 다음을 궁금하게 만들다니 나는 망했어, 작가님 너무해라는 기분이 들고 말았다. 아무래도 스포일러니까 더 떠들면 안되겠지만요, 나도 연재분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닫고 기다리고 있으니까, 빨리 다음 권이 나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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