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연말 가요시상식 프로그램을 통해서 엑소의 팬이 되었기 때문에 엑소의 노래 가운데 가장 익숙한 건 2nd 미니앨범 <중독>의 수록곡들이다. 그전 노래들-엑소를 대세아이돌로 만든 '늑대와 미녀', '으르렁'은 잘 들어보지 못했었다. 그전부터 엑소를 몰랐던 건 아니다. 오랜 세월(!) 아이돌을 두루 좋아해왔고 특히 SM 아이돌 가운데 샤이니와 f(x)의 팬이었으니까, 그 뒤에 어떤 팀이 나올지 기대가 컸다. SM은 이상한 시도도 많이 하니까, 무려 100일 동안 주구장창 티저영상을 내놓을 때도 그걸 다 따라 보고 있진 않았지만 뭔가 야심찬 프로젝트를 하나보다 싶었다. 그러고 나온 엑소 설정 영상-외계에서 온, 초능력을 가진 각각 여섯 명의 멤버들로 구성된 쌍둥이 그룹, 중국과 한국에서 활동하고, 멤버 둘씩 능력이 연결되고 등등-을 보면서 신기한 아이돌 가상세계를 구성하는구나, 어벤저스 같은 거 하려나 했다.
어차피 아이돌은 비현실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니까 그룹이나 멤버의 설정이야 아무리 이상해도 괜찮아. 다만, 데뷔곡 '마마'를 들었을 때 음악 스타일이 너무... 샤이니, f(x)로 이어지는 노선과는 너무너무 다르잖아! 하고 실망했다. 동방신기 라이징선 스타일보다도 더 옛날, 마치 H.O.T.로의 회귀처럼 들려서. 게다가 멤버들이 너무 애기들처럼 보여. 그 뒤로 비스트, 인피니트들이 적당히 귀여우면서도 덜 위험한 타입이어서 엑소는 일단 넣어두는 걸로. 그래도 '마마'는 꽤 자주 들었는데, 왜냐하면 이게 운전할 때 들으면 잠이 깨고 아주 좋습니다. 그즈음 B멤버들과 차를 끌고 여행을 갔었는데 아는 사람은 모두 알듯이 나는 엄청나게 운전이 서투르기 때문에 똑같은 거리도 남들보다 훨씬 오래, 훨씬 헤매면서 다니기 일쑤라서 정신이 번쩍 들 배경음악이 필수. 그때 디자이너N이 '마마'를 틀어줬는데 완전 효과적이더라는. 그래서 운전할 때마다 애청하였다.
암튼, 팬이 되니 예능 프로그램 출연 영상들도 보게 되고 그전 음악들도 궁금해져서 '으르렁'과 '늑대와 미녀'도 찾아보았다. 2012년 마마 데뷔 이후로 복잡하게 공을 들인 데 비해서는 대중의 반응이 별로였고 데뷔 활동을 마치고 공백기가 꽤 길었다. 다음해 '늑대와 미녀'가 나왔는데 이쯤에서 반응이 좋아지고 그 다음 '으르렁'으로 완전히 떠서 2013년은 엑소의 해였던 듯. 나조차 무관심한 가운데 '으르렁'은 꽤 익숙할 정도니까. 그러나 최근 뒤늦게 예전 동영상들을 보면서도 2013년 무대 영상들은 그냥저냥 디오의 얼굴이나 쳐다보았다. '중독'이 없었으면 나는 엑소 팬이 안 되었겠구나 싶었다. '으르렁'에서도 아직 너무 애기들이고, 비주얼 스타일도 난 스포츠룩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러면서 2013년 MAMA(엠넷 시상식)의 엑소 무대를 보았는데!!!
뭐니, 얘들. '늑대와 미녀'는 도입부의 나무 마임이 너무나 인상적이기 때문에 그 뒤의 퍼포먼스를 자세히 못 봤었는데, 제대로 보니까 정말... 놀랍다? 굉장하다? 흔히 "남자는 늑대"라는 비유들을 하니까, 이 노래 역시 그런 정도라고 생각했다. 가사도 '아오-' 하는 의성어를 써가면서 꽤 색다르지만 SM의 가사가 이상한 거야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근데, 무대를 진지하고 꼼꼼하게 보니까, 이건 '비유'가 아니었다. 얘네는 늑대 그 자체다. 네 발로 기고 하울링을 하고 무대를 날아다니는데... 늑대 같은 남자사람이 아니라, 늑대들이었어. 게다가 도입부의 나무에 이어, 대형의 변화나 동굴과 나무 등을 만들어가는 것을 보면, 이 노래의 퍼포먼스는 달리 어디서도 쓸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클럽 같은데서 응용할 수 있는 댄스가 아니자녀. 이런 걸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할 수 있는 건 엑소밖에 없겠지.
'늑대와 미녀'는 노래+댄스가 아니라, 하나의 집체극이다. 음악도 극의 한 요소로서 작용한다. 이에 비하면 그 뒤의 '으르렁'이나 '중독'은 훨씬 소프트한 퍼포먼스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엑소들은 자신들이 늑대라는 걸 알고 움직인다. 그러고보면 '사람이 아닌 무엇'인데 익숙한 모양이다. 애초에 외계에서 온 초능력자들이었자녀. 데뷔 후 여러 예능프로그램들에서 초능력 설정에 대해 조롱당하여 부끄러워하면서도 엑소들은 그걸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고 완전히 인위적인 컨셉이라고 설명하지도 않고 적당히 받아들여온 것도 같다. 그러니 이번에는 늑대라는 정체성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늑대와 미녀'의 늑대들을 깨달으니, '중독'의 퍼포먼스도 좀 다르게 보였다. '중독'의 사랑은, 중독에 빠진 것 같은, 이 아니라 정말 중독을 일으키는 것이다. 무대에서 엑소들은 그냥 사랑에 빠진, 정도가 아니라 '중독자' 그 자체이다. 멋진 남자를 연기하는 게 아녀, 완전히 미치광이 쪽이쟝. 그래도 이번에는 그나마 사람인가 싶지만. 그래도 멋지지... 팔다리를 휘두르는 게, 뭔가 역시 나와는 다른 종류의 생명체인 거 같다. 어떻게 생긴 신경구조면 저렇게 움직일 수 있을까 싶고. 안무에서 매 순간 손과 발의 정확한 각도가 정해져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다시 돌아와서, '늑대와 미녀'는 다른 아이돌 누구도 시도하지 못할 전무후무한 퍼포먼스이다. 애초에 이런 퍼포먼스를 지향하는 팀이 쉽게 나올까 싶다. 늑대가 되자고 맘 먹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냐고. 엑소에게도 아마 다시 없을 '완전체'의 작품이다. '으르렁' '중독'으로 이어지는 걸 보면 퍼포먼스 컨셉도 조금씩 바뀌고 있고. 문득, 이런 무대를 경험하는 건 아마 굉장하겠지 생각했다. 약간 감상적으로, 이런 무대를 함께하고 떠나버린 두 멤버를 떠올렸다. 떠난 자, 남은 자 모두에게 이것을 공유했던 경험은 이제와서는 완전히 같게 반복될 수 없는 현실에 이르렀다. 영원히 그 시공간에 두고 온 '늑대와 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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