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Y와 맥주를 마시던 중에, "요즘에는 왜 블로그에 식당 업데이트가 없는가, 소소한 즐거움이었는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댓글을 달아주지 않아서 아무도 계속 읽고 있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그럼 이번 주말에는 힘내서 밥 먹은 이야기를 써볼까 하고 잠시 의욕에 불타올랐지만 컴퓨터 앞에 앉기도 전에 꺼져 버리고 말았다. 밥을 안 먹고 있는 것도 아니고(날씨가 더워서 입맛이 없어!도 아니고 매일 잘 먹고 있다...) 포스팅할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약 1년 정도의 프리랜서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직장인이 되면서(4대보험의 보장을 받는 안락한 삶?) 밥 이야기가 뚝 끊긴 것은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내 모든 에너지를 직장에 쏟아붓겠어 라는 산업전사의 마인드도 아닌데, 회사에 소속되자마자 퇴근해서는 무엇도 진득하게 할 수 없게 되었다. 어찌된 셈인지 '일과 삶의 조화'를 몸에서 받아들이지를 않아. 블로그에 식당 포스팅하는 건 즐거운 취미였는데 말이지.
지금껏 단 한 번도 일해보지 않은 낯선 동네에 사무실이 있어서 아직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니까, 조만간 다시 즐겁게 식당 이야기를 떠들어대게 될 것이다. 사무실 주변의 식당들은 모조리 처음 가보는 곳들이다. 포스팅을 안 하니까 음식 사진을 찍는 것도 종종 잊는다. 어차피 몇 군데 가다보면 맛있는 곳은 또다시 가게 될 테니까. 고층 빌딩이 즐비한 도심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식당도 엄청나게 많다. 그러나 오늘 점심은 사무실 주변을 슬슬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는 바람에 마침 눈앞에 보이는 롯데리아로 피신하여 오징어버거 세트를 먹었다. 이런. 오랜만에 먹은 오징어버거는 엄청나게 매웠습니다. 한 달 전쯤 공항 롯데리아에서 먹었던 것 이렇게 맵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 사이에 소스 제조법이 바뀐 모양이다.
식당 이야기는 천천히 하고, 최근 읽은 책 이야기를 간단히.
독과 도 |
알라딘 서재 시절부터 팬이었던 파란여우님의 서평집. 서평집을 읽다보면 읽고 싶은 책이 잔뜩 생기게 된다. 요즘 읽은 책이 거의 없다보니 그 목록은 더 길고, 또 한편으로는 읽고 싶은 책이 많은 서평집은 더 좋은 것이겠지. 특히나 파란여우님의 서평은 책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현재를 함께 들여다보게 하는 인문에세이라서 더욱 더 생각할 거리가 많다. 천천히 하나씩 읽으면서 그중 또 맘에 드는 책을 골라 읽는 기쁨을 느껴야겠다... 고 생각했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한다. 그런데 '1Q84'는 2권까지 읽고나니 3권은 사놓기만 하고 이상하게 펼칠 수가 없었다. 아직도 못읽고 있다. 그런데 '채소의 기분'이라는 제목에 끌려서 덥석. 그 전에 '무라카미 라디오'를 읽을 때, "어째서 패션잡지인 '앙앙'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가? 멋지고 분하다."는 기분이었다.(나도 잡지 에디터였으니까) 그게 벌써 십 년 전이라니. 이 에세이집은, 소설 1Q84를 끝낸 무라카미 하루키가 십 년 여만에 다시 '앙앙'에 에세이 연재를 시작하여 일 년 치를 묶어 낸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독특한 느낌이 살아 있고 엄청나게 대담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재미있다. 가끔씩 어느 문장에서 멈춰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본다. 뭔가 좀 얼버무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대목들이 있는데, 오랜 독자였던 덕분인지 역시 희미하게 혹시 이건 그건가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열성적인 독자는 또 아니어서 그냥 어렴풋하게 내 멋대로 느낀 다음 넘어간다. 좀 더 팬이라면 명쾌한 확인을 위하여 이것저것 막 뒤적이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지지 않는다는 말 |
일본에 무라카미 하루키라면, 내게는 김연수가 있다.(읭?) 정말로 좋아하게 된 작가라서, 게다가 이번 에세이집은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한 꼭지씩 천천히 읽으려고 마음 먹었는데, 펼친 자리에서 내처 끝까지 읽어버리고 말았다. 되새길 틈도 없이 오버페이스로 너무 급하게 읽어서, 아니야 이건, 다시 천천히 읽어야겠어 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책에는, 비록 내가 담당 에디터는 아니었지만, 내가 일했던 잡지에 연재되었던 글이 실려 있다. 그러니 이제 '앙앙'이 부럽지 않아. 추억이 돌부리처럼 덜컹덜컹...? 다시 천천히 읽고 김연수 작가에게 팬레터를 써야지. 아직은 아니지만, 십 년쯤 뒤에는 나도 여상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달리기 시작했다고 쓴 김연수 작가처럼,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올레를 터벅터벅 걸었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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