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뿌팟봉 커리, Y는 비슷한 재료로 만든 소프트크랩누들-소프트크랩, 뿌팟봉 커리 소스, 쌀국수-을 골랐다. 포장이 아니라 가게에서 먹었다. 두 가지가 맛이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다르다. 뿌팟봉 커리는 그야말로 커리. 게튀김에 커리소스를 올린 것으로 밥도 국수도 들어가 있지 않다. 커리가 약간 매콤한 편이다. 반면 소프트크랩누들은 땅콩맛이 더해진 부드러운 맛. 전혀 맵지 않다.
뿌팟봉 커리는 한 접시를 혼자 다 먹기에 너무 느끼하다. 양배추와 숙주가 약간 들어가 있지만 튀김과 소스의 느끼함을 중화시키기엔 역부족. 게다가 밥이나 국수가 없으니... 사이드로 둘 중 하나를 골라서 같이 먹을 수 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게다가 게가 살짝 비린맛이 돌았다.
식사에 반찬은 포장피클뿐이다. 국물 정도는 같이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먹다가 아무래도 국물이 땡겨서(특히나 뿌팟봉 커리가 느끼해서 짬뽕국물 같은 게 먹고싶었다) 추가할까 싶어 메뉴를 다시 살펴보니 국물요리는 아무것도 없다. 너무 건조한 조합이로고.
낯선 음식에 대한 호기심은 충족되었지만, 너무 난해한 걸 골랐는지도 모른다. 두 번 가보고 싶다거나 달리 도전해보고 싶은 메뉴도 없구나. 그런데 이런 음식을 포장해서 집에 가져오면 맛이 잘 유지가 되려나?
식사 뒤에는 커피를 마시러갔다. 작은 카페 같은 데 가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워낙 오피스타운이라 근처에는 스타벅스, 커피빈, 할리스커피 등이 포진해있다. 제일 덜 가본 탐앤탐스로.
사진으로는 잘 티가 안 나지만 무려 4,100원짜리 그란데 사이즈의 아메리카노. 아주 큼지막한 머그. 한 모금 마시다가 사진을 찍어서 조금 양이 줄어보이지만 처음부터도 완전히 꽉 차 있는 건 아니었다. 맛은... 이건 독일로스팅이 틀림없어. 예쁘장한 동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가 너무 맛이 없기에 놀라서 어디 커피냐고 물어봤더니 독일에서 온 원두라는 답을 들었는데, 그 맛과 똑같다. 그 뒤로 독일커피에 대한 편견이 생기고 말았다고. 홍대앞 인더페이퍼 카페에서 마셨던 아메리카노도 딱 이런 맛이었다. 원두 말고 에스프레소 기계를 확인하는 편이 나으려나요... 브랜드커피점의 아메리카노에 엄청나게 경이로운 맛을 기대하는 건 아닌데 보통보다 한 단계 아래의 맛.
얼핏 리필도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카운터에 붙어 있는 걸 봤는데, 그란데 사이즈로 마시고 또 리필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다. 톨사이즈로 마실걸 그랬지. 다른데 탐탐이 어땠더라... 추운날 벌벌 떨다가 들어간 홍대앞 탐탐은 추위를 달랬던 기억만 나는구나. 암튼 탐탐 구로디지털단지점의 아메리카노는 내 취향은 아니라는.(강조의 는는는) Y는 카페모카를 마셨는데 샷이 너무 연하다고 평했다.
다 쓰고나서 생각해보니, 식사도 별로였고 커피도 별로라고 투덜대면서 왜 굳이 이렇게 열심히 포스팅하고 있나? 너무 심심해서? Nothing happen to me. 아니, 오늘의 중요한 기억은 Y를 만나서 나눈 이야기들이다. 그렇지만 사적인 이야기를 웹에 쓰고싶진 않기 때문에 음식에 대해서나 투덜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블로그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에, 엇나갔나? 앞으로는 맛있는 음식들을 잘 골라서 맛있게 흡족하게 먹은 이야기들을 쓰고싶다. 그러나 요즘 새로운 음식점에 자꾸 도전하고 싶은 기분이고 지금까지의 전적으로 미루어보면 내가 고른 음식점들은 실패 확률이 높다.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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