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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플래닛의 첸과 디오

지난 번에 경수가 말이 없어서인지 라디오에 잘 안 나와서 아쉽다-고 하자마자 첸, 디오가 라디오 일일디제이를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는 뭔 말만 하면 헛다리야. 암튼 디제이 해준다니 고맙게 기다렸다. 그래 말 잘하는 첸과 같이라니까 걱정 없겠네. 근데 무슨 프로그램이라고? 근데 웬 듣도보도 못한... KBS 직캠라디오 케이팝플래닛?

2015년 5월 3일 오후 11시 KBS 쿨FM - 케이팝플래닛

처음으로 본(!) 이 프로그램은 일요일에 방송하는 1시간짜리 일종의 보이는 라디오인 모양이다. 생방송은 보라이고, 방송중에 찍은 여러 각도의 직캠영상들을 추가로 모바일앱으로 공개한다는 거 같다. 대체 뭐하는 거냐... 이건 티비도 라디오도 아니고 인터넷동영상방송 같은 식인데 왜 이런 걸로 공영방송의 전파와 장비를 낭비하고 있냐. 아무리 생각해도 방송 컨셉이 좀 어처구니 없는데, 방송 내용은 더 어이없습니다! 팬들의 사연이라고 '엑소는 OO이다' '엑소가 OO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류의 내용을 받아서 포스트잇에 써서 판에다 붙여 놓고 뜯어서 읽어준다. 두 디제이에게 "오빠 우리 무슨 사이야?"라고 물어보는데(돌아가면서 디제이 중 한쪽이 여자 목소리로 질문을 연기해 준다) 뭐라고 답할 것인가, 요거트를 얼마나 섹시하게 먹나 이런 걸 시키고는 방송 스태프들의 거수로 승부를 정하고 진 사람은 뿅망치로 머리를 맞는다. 너무 유치하고 안이하지 않냐고요. 유치원생 대상이냐.

게다가 그 안이한 구성조차 이 일일디제이들은 능숙하게 해내지 못한다. 그 짧은 사연을 읽는데도 놓치고 실수하고 팬들이 보내 온 요청들을(아마도 사전에 준비되지 않아서) 즉석에서 순발력 있게 처리하지도 못한다. 자장가를 불러 달라고 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없고 걸그룹댄스를 춰 달라고 하면 아는 안무가 없다. 같은 소속사 후배들, 1위 후보로 같이 오를 만큼 핫한 레드벨벳의 아이스크림 케이크도 못하냐. 그러나 맹점은, 청취자가 디제이의 팬이라는 거. 이걸 같은 디제이가 매일매일 하고 있다면 누군가 미쳤냐고 난장을 치고 방송국을 고소라도 했을 거 같다. 그러나 딱 한 번,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오빠가 나와서 1시간 동안 헛짓거리를 하는 걸 보는 건 꽤 재미있군. 다행이다. 

아마 이 방송은 경수와 경수팬들에게 레전드가 될 것이다. 방송의 의도나 완성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첸과 디오의 성격과 관계 때문에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상황들이 튀어나와서 팬을 흡족하게 만든다. 요거트를 섹시하게 먹으라는 미션에서(내 궁금증: 남자가 요거트를 어떻게 섹시하게 먹지? 이 미션에서 보고 싶은 장면은 뭘까?), 경수는 시작부터 너무나 부끄러워 한다. 경수는 늘 섹시, 애교 이런 거 다 잘 못하겠다며 진즉에 괴로워 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런다. 그렇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첸의 격려를 받으면서 '섹시하게(=경수 생각에 남자답게)' 요거트를 들이킨다.(이 대목에서 이미 황당해서 귀엽다. 그건 정말 안 섹시한 아저씨... 디오야 누가 네 앞에서 그런 짓을 했냐, 그게 그렇게 섹시해 보이더냐...) 방송을 아는 첸이 "끝이에요? 너무 재미 없잖아요!" 하면서 다시 이렇게 저렇게 지도해 준 결과(그와중에 경수는 "나한테 제발 하지 마세요... 못한다구요..."라고 중얼중얼거리면서도 첸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고 마는데, 아놔 도경수 정말 너무 귀여워), 섹시한 척하다가 끝내 요거트를 뿜어버리고 얼굴이 새빨개져서 진심으로 사과하며 괴로워 한다. 

경수에게는 정말 예상치 않았던 최악의 시추에이션이었을 텐데 보는 사람은 웃긴다. 만약 경수가 너무나 능숙하게 섹시하게 마무리했다면 그냥 그러고 말았을 텐데, 너무나 웃기게, 경수의 캐릭터를 아는 팬에게는 뭔가 모르긴 몰라도 이상하게 마무리 될 것이라고 예상하게 하는 미션이긴 한데, 그게 또 그렇게까지 그런 결과로 마무리 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한 것으로... 

그리고 이번 방송에서 깨달았는데, 첸은 정말 경수를 잘 다룬다. 한 팀으로서 같이해 온 기간이 있으니까 경수를 잘 이해하는 것까지야 다른 멤버들도 대개 비슷하겠지만, 첸은 어떻게 해야 경수가 방송을 잘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잘 어르고 달랜다고나 할까. 백현이나 찬열, 심지어는 엑소를 수호하는 수호형도 경수의 엉뚱한 리액션에 웃고 놀리고픈 마음이 먼저 일어나는 거 같던데, 첸은 정말 다정하게, 즐거워 하면서도 경수가 너무 곤란해 하지는 않게 적응하게 애쓴다. 평소 첸은 비글대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팀내 장난꾸러기인데, 최근 진지해졌다고는 해도 이렇게나 능숙하게 다정할 수가. 경수도 그걸 아니까 첸이 시키는 대로 잘 따르는 듯. 이날 방송의 내용은 정말 별 거 아니라서 그렇게 당황할 필요가 없었을 거 같은데 원래 방송이란 거에 겁먹는 스타일인지 아님 예기치 않게 당황 포인트를 다 찔러 버린건지 방송 시작하자마자부터 경수는 혼란에 빠져 첸만을 의지하고 따라간 거 같은 모양새다. 그래서 첸은 결국에는 그야말로 굉장한 것을 이끌어 내고 마는 것입니다... 

경수팬에게는 엄청나게 재미있는데, 과연 이런 방송을 팬이 아닌 사람은 납득할 수 있으려나. 경수와 첸의 캐릭터를 모른다면 두 디제이가 어리버리하게 우왕좌왕하는 걸로만 보일지도. 애초에 팬이 아니라면 방송을 들을리가 없을 거 같은 프로그램이긴 하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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