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0일
오늘은 6월 10일, 6월 민주항쟁 25주년이다.
한국현대사가 얼마나 활화산 같은가, 이런 때 깨닫지만, 25년밖에/25년이나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몰려온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역사다. 사반세기라고 해도 되게 짧은 시간이다. 그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여전히 얼마나 많은가. 여전히 6월 민주항쟁은 산 역사다. 아직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가 이렇게 짧기만 하다. 그러니 잊지 말아야겠지... 한국 민주주의는 아직 너무나 연약하다. 그날 대한민국을 통치하던 쿠데타의 수괴가 오늘 여전히 희희낙락 육사생도들의 거수경례 같은 걸 받고 있는 2012년이다.
대학시절 현대사 공부를 하면서, 6월 민주항쟁의 빛나는 승리보다도, 6.29 선언이 있었던 6월 29일을 제2의 만우절로 불러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7 8 9 노동자대투쟁의 빛나는, 처절한 패배를 더 깊이 마음에 새겼었다. 아흔 아홉 번 패배할지라도 단 한 번 승리 단 한 번 승리- 승리 같은 건 아직 한 번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실은 패배로 점철된, 가슴 아픈 현실. 역사를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비단 한국뿐 아니라 인간의 역사는 고통스럽게 빛나는 패배를 통해, 무수한 희생자들을 전쟁터에 남겨두고, 살아남은 자들은 비통함을 가슴에 채운 채 가시덤불과 진창으로 돌아서 삐걱거리며 왔다. 어쩔 수 없다. 싸우지 않았더라면 더 가혹하게 수렁에 빠져들기만 했을 것이다 라는 믿음을 지고.
물론 이런 이야기는 세월이 지난 뒤에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실존했던 사람들은 모두 진짜 사람들이었으니까. 가장 빛나는 사람들의 다음으로, 누군가의 말마따나, 이후에 어떻게 변절하고 타협했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그 현장을 살아 냈던 사람들을 존경한다.
"할머니, 할머니는 그때 어디에 있었어요?"
교양철학 과목의 교수님이 스무살 남짓의 대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 역사의 현장에 서 있어라. 훗날, 여러분의 손자 손녀들이 이렇게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한 학기짜리 짧은 강의였지만 그 교수님이 지나가듯 던진 한 마디가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아니 교수님, 저희 세대에게는 그 뒤로 별일이 없었습니다... 역사의 현장이 어디인지 모르겠어요 라고 변명하고 싶어지지만 한편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도.